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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의 새 여름

 

 

 

쨍한 볕이지만 무더위라 할 만큼 따갑게 내리쬐지는 않으며 그 공기가 후끈하지도 않다. 너른 들판엔 봄철에 만개했던 하얀 데이지들이 푸른 이파리들 사이에서 아직 빛깔을 잃지 않고 있다. 조그만 돌멩이까지 비치는 물가에 발끝을 담구자 기분좋은 물결과 청량한 시원함에 발을 담군 채 징검다리를 따라 반대편으로 단숨에 종종걸음쳤다. 이어 징검다리를 건너온 에일린은 그녀와 달리 꽤나 더워하며 매끄러운 흰머리칼들을 정리해 단정히 묶고는 상기된 양뺨을 식히려 두어번 손부채질을 한다. 이미 물가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있던 유페미아가 에일린을 보곤 한가득 웃더니 지팡이를 흔들어 시원하게 살랑거리는 바람을 일으켰다.

 

 

“많 이더워?”

 

 

에일린이 셔츠소매를 풀고 접어 올리며 그녀 곁에 앉았다. 유페미아가 일으킨 산들한 바람에 그제야 더위가 조금이나마 식는지 지팡이로 미적지근해진 병에 대고 두드려 냉기가 퍼지게 한다.

 

 

“...조금요. 유월이 이리 더울 줄 몰랐어서.”

 

 

차가워진 음료를 유페미아에게 건네곤 대답했다.

 

 

“옷을 그렇게 입으니까 그렇지!”

 

“하지만 선배는 혼자 다른 계절 같은걸요.”

 

 

실은 원체 외출을 안 해 이맘때 날이 더운지, 아직은 선선한지 그감이 없어서였다. 외출을 기피하는 정도는 아니였지만 싫어하지 않는 것은 아니였고, 햇빛의 따스함을 은근한 따가움이라고 생각했기에 긴 옷을 고른 것도 있긴 했지만.

 

나름 고심해서 고른 옷인데. 특별히 그녀의 옷장에 아끼는 옷, 평소 입는 옷이 나뉘어 있는 것은 아니라지만 이 정도라면, 이라는 말에 맞추어 제 기준대로 심사숙고한 결과였다.

 

 

“여름 다 됐는데, 뭘. 에일린은 여름 싫어해?”

 

 

말간 웃음이 햇볕에 하얗게 부서졌다. 헝클어진 붉은 머리칼, 태양같은 웃음, 그 웃음의 시원한 소리. 문득 여름내음을 맡은 것 같았다.

 

 

“좋아할걸요?”

 

 

좋아해요, 동경해요, 애정해요. 여름의 숨결, 그 향, 그 빛. 시리게 비치는 열기. 유페미아가 발을 담그고 물장구치는 투명한 물살, 그로 인해 둥글게 퍼져나가는 파장들을 바라보며 답했다.

 

 

“나는 엄청 좋은데, 이번엔 더 빨리 오기도 했으니까”

 

 

여름빛을 이해할 수 있다면 좋았을텐데. 이렇게 생각하던 에일린은 작게 웃으며 말했다.

 

 

“여름은 늘 일찍 오는 것 같은걸요? 이번이 조금 빠르긴 한 것 같아요.”

 

 

뜬금없이 둘이서 맞는 여름이라니. 사실은 진작 여름이 왔었는지도 몰라. 뜬금없는 건 나일지도 모르지. 에일린은 조금만 덜 더우면, -‘덜’이였을까, ‘더’였을까?- 그러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아직 반짝거리는 데이지를 쳐다봤다.

 

 

 

 

 

-

 

 

마른 땅에서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열기보다, 끈적거리는 공기보다 먼저 자리한 네가 내 새 계절, 새 여름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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